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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1월의 책 "행복의 기원"

Ssul 2026. 1. 27. 23:46

올해부터 다시 책을 읽기로 하였다.

최소한 한달에 한권은 읽고, 서평까지 쓰기.

 

26년 첫번째 책은 서은국 교수의 "행복의 기원"

표지디자인이 뭔가 마음에 든다(?)

 

행복은 왜 항상 나중일까

 

우리는 어릴 때부터 비슷한 말을 듣고 자란다.

공부를 잘하면 행복해질 거고, 좋은 대학에 가면, 좋은 직장을 얻으면, 그러고 나면 비로소 행복해질 거라고.

행복은 늘 미래에 도착해야 하는 상태였다.

 

지금은 견디는 구간이고, 행복은 목적지처럼 설정되어 있었다.

『행복의 기원』은 이 익숙한 전제부터 건드린다.

 

행복은 인생의 목적이 아니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인간의 목적은 단순하다.

생존과 번식.

행복은 그 목적을 향해 움직이도록 설계된 보상 장치에 가깝다.

행복은 도착지가 아니라 지금 행동하게 만드는 신호다.

 

행복의 방향이 바뀌면, 질문도 바뀐다

 

행복이 목적이 아닐 때,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달라진다.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가 아니라

“언제, 무엇을 할 때 행복이 작동하는가?”

책은 그 답을 아주 일관되게 제시한다.

사람이다.

 

가장 본질적인 쾌감은 먹을 때, 섹스할 때, 그리고 사람과 관계를 맺을 때 온다.

 

행복을 한 장의 사진으로 담는다면

아마도 이런 장면일 것이다.

좋아하는 사람과 마주 앉아 같은 음식을 먹는 순간.

 

그래서일까.

통계적으로 외향적인 사람들이 더 높은 행복감을 느낀다고 한다.

사람과의 접촉이 잦을수록 행복이라는 신호가 더 자주 켜진다.

그런데, 사람은 너무 피곤하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사람은 가장 확실한 행복의 원인이면서, 동시에 가장 강력한 불행의 원인이기도 하다.

관계는 기쁨만 주지 않는다. 비교, 평가, 상처, 오해를 함께 데려온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이 감각이 더 선명하다.

 

우리는 시험을 통해 성장했고,

평생 정답을 찾는 구조 속에서 살아왔다.

하나의 답으로 수렴되는 사고에 익숙해진 사회.

그 결과, 정답에서 벗어난 선택과 삶에 쉽게 불안을 느낀다.

하지만 행복에는 원래 정답이 없다.

 

가치 있는 삶과 행복한 삶은 다를 수 있다

책은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진다.

가치 있는 삶(good life)

행복한 삶(happy life) 은 정말 같은가?

 

우리가 “가치 있다”고 말할 때 그 기준은 종종 타인의 평가다.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선택, 설명하기 쉬운 성과.

반면 행복은 훨씬 개인적이다.

설명도 어렵고, 증명은 더 어렵다.

이 둘을 혼동할수록 우리는 점점 행복을 미루게 된다.

 

우리는 왜 늘 미래에만 살고 있을까

우리는 becoming에 과도하게 집착한다.

더 나아질 나, 더 안정된 나, 더 괜찮아질 미래.

 

그 과정에서 being, 지금 이 순간의 감각은 사라진다.

하지만 진화론적 관점에서

행복은 “언젠가 받을 보상”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을 살게 만드는 장치다.

행복을 나중으로 밀어둘수록 행복은 제 기능을 잃는다.

 

행복은 의지가 아니라 환경이다

『행복의 기원』이 주는 가장 현실적인 메시지는 이것이다.

행복은 생각을 바꾸는 문제보다, 환경을 설계하는 문제에 가깝다.

행복해지겠다고 다짐하는 것보다, 행복이 발생할 확률이 높은 환경을 주변에 배치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책은 이를

“행복 압정을 주변에 뿌려놓는 일”에 비유한다.

사람, 장소, 루틴.

 

나에게는 커피 같은 아주 사소한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행복은 여전히 중요하다

 

행복이 목적이 아니라 도구라고 해서 그 중요함이 줄어드는 건 아니다.

오히려 더 중요해진다.

행복은 우리를 살아 움직이게 하는 가장 원초적인 신호이기 때문이다.

『행복의 기원』은 “행복해져야 한다”는 압박 대신

 

이 질문을 남긴다.

지금 내 삶에서 행복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가?

 

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만들었다면,

이 책은 이미 역할을 다 한 셈이다.